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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0월 6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3.10.06 14:54 조회 1,743 추천 0
2013년 10월 6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3_Oct_6)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사도행전2:43~47
 1992년 12월 18일 로스엔젤레스 산마테오에 살고 있는 메리 제인 셰퍼드라는 여인이 죽었을 때 그 일대 모든 
상가들은 문을 닫고 공휴일처럼 지내면서 그를 애도하였습니다. 마치 사전에 모두가 약속한 것 같았습니다. 
그 여자는 훌륭한 업적을 남긴 여자가 아닙니다. 평범한 가정 주부였는데 한 도시 전체 시민이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기며 슬퍼하였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메리 제인 셰퍼드는 
예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영접한 후 예수님을 닮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구원받아야 할 죄인임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모신 후부터 그의 생각과 행동은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사랑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먼 곳까지 가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으니 
자기가 살고 있는 이웃들을 사랑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늘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대접을 하면서 
사랑하였습니다. 정성껏 이웃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주방 천장에 빨래줄 같이 거미줄처럼 이리 저리 매어 놓고 
그 집에 초대되어 식사한 이들의 이름을 한 종이에 한 명씩 적어서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방문한 날짜도 같이 적었습니다. 카드 색깔도 다양하게 하였습니다. 그의 
집 천장은 어느 덧 만국기가 펄럭이는 것같이 온통 방문자 이름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자연히 하루 기도시간도 
늘어났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주로 영접한 평범한 가정주부인 자기가 이웃을 위하여 할 일이라고 확신하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웃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여인이 자기들을 위하여 늘 기도하여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지나가면 마치 
개선장군이 지나가는 것처럼 환영하였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 그녀를 보내는 장례식 때에 거의 한 도시에 
시민 전체가 함께 아파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한 솟의 밥을 한 상에 둘러서 함께 먹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관계의 의미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가족의 수를 물어 볼 때에 식구가 몇이냐고 묻습니다. 식구(食口)는 ‘먹는 입’을 말하는 것으로 
한 솟에 밥을 같이 먹는 이가 한 가족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가족을 밥상 공동체라 부르기도 합니다. 

 어제 제4남선교회 회원들이 기도원을 다녀왔습니다. 예배순서도 미리 교역자에게 부탁하여 예배  드리고, 
고찬일 권사님이 헌신하여 13명의 식구들이 보양을 하고 오셨다고 합니다. 물론 기도원 둘러보고 겨울을 
대비하여 물도 빼고 좋은 시간을 갖고 왔습니다. 교회에 도착하여 저도 마당에서 남선교회 회원들을 보았는데,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그전보다 더 끈끈해져 있는 것을 보고 왔습니다. 
  헨리 나우웬이 사람들이 사람 사이에 경계를 푸는 곳 두 가지를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는 침실이고, 
또 하나는 식탁이라고 합니다. 밥을 먹을 때 서로간의 관계가 더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초대교회는 완벽한 밥상공동체였습니다. 너와 나를 넘어 ‘우리’만이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네 것과 내 것이 없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구제하고, 날마다 모여서 예배하고, 
모일 때마다 한상에 둘러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 결과로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서 날마다 부흥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밥상공동체의 기원이 바로 오늘 우리가 생각할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면서 십자가의 사랑과 구원의 은총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일 때마다 공동식사를 하였고, 그것이 
오늘날에 성찬식으로 이어져 온 것입니다. 
 이 전통에 따라 매 주마다 성찬식을 하는 교회도 있고, 저희 교회처럼 한 달에 한번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성찬식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다소 정적인 의식이어서 의미를 모르고 행하면 지루하게 느낄 수 있기에 
언젠가는 그 의미를 알려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전 세계에 있는 교회들이 다함께 
성찬식을 거행하는 세계성찬주일을 맞이해서 성찬의 의미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의미를 알고 성찬을 받으면 
더 은혜가 될 것입니다. 

 카톨릭 교회는 7가지 예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7가지 예전이라 함은 세례, 성만찬, 고해, 견진, 결혼, 도유, 
안수입니다. 이 중에 생소한 단어가 몇 가지 있을 것입니다. 견진과 도유일텐데요. 짧은 설명을 드리면 견진은 
유아 세례를 받은 이들이 다 자란 후에 다시 성숙한 신앙으로 재결단하는 것을 견진성사라고 합니다. 
우리로 비유하면 입교식과 비슷할 것입니다. 그리고 도유라는 것은 병자성사라고 불리 우는 것인데 임종의 
순간에 혹은 깊은 병자에게 베푸는 예전입니다. 
 우리 개신교에서는 그 중에 두 가지 예전만을 인정하는데 세례와 성찬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성례전은 바로 위의 두 가지입니다. 세례는 불신자가 신앙에 입문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예식이고 성찬은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여 믿는 자의 믿음을 더 돈독하게 하며 
은혜를 더하는 예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예배의 역사에 이 성례전의 의미와 그 비중은 교리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가 
예배를 드리는 현장적 측면에서도 매우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성례전이 이론적 교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배 가운데서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가장 중요한 신앙적 표현과 경험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례전이라는 용어가 생긴 유례를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성례전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Sacramentum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Sacraments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3세기의 터툴리안으로서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로 약속한 후 세례를 받고 성찬식을 참여한 
그 예전을 가리켜 성례전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목숨을 바치기로 한 결단이 있었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 후 이 성례전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포와 예배자들의 진지한 응답이 나타나는 현장이 됩니다. 성례전을 
통하여 하나님은 사랑의 실체로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성례전이란 모든 예배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하나님의 방편,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공동체 의식을 재확인해주고 누군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다짐하게 합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영성가인 헨리 나우웬은 그의 유대인 친구에게 우정의 편지를 쓰면서 성찬식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이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성찬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예배 시간 말미에 있는 지루하고 
지겨운 시간으로 남들이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행하는 요식으로 치부되는 것이 안타까워 오늘 이 중요한 
주일예배 시간에 말씀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성찬의 신학적 이해와 의미를 설명드릴 
테니 잘 들으시고 오늘 우리가 시행하는 성찬식에 적용하여 신비로운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 하나님께 감사
 먼저 성찬이라는 말은 영어로 ‘Eucharist’라고 합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 ‘유크리스티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감사를 드린다.’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찬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인간을 위하여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찬양하며 장차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모든 역사에 대하여 
감사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 가운데 으뜸은 구속의 은혜입니다. 죽었던 우리를 살려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은총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용납해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셨고, 그 자녀인 권세를 누리며 사는 
엄청난 신분상승의 특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이 나를 부르신다 하여도 천국 갈 것에 대한 
확신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함께해 주신다는 보증을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찬을 행할 때마다 이 사랑이 다시 우리에게 감동으로 밀려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희생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 바친 희생을 통하여 지금도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역사하시는 효과적인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이시며 동시에 온 인류의 대속을 위한 희생제물이 되심으로써 자기 
비움과 순종적 희생을 나타내셨습니다. 따라서 성찬에는 예수님의 희생과 함께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드려야 할 희생이 담겨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희생에 
연합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희생제물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참사랑은 누군가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는 것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찬을 대할 때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누군가를 위하여 내 생명을 나누고 싶은 감동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나눔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존재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나눈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생명을 나누며 살 것을 요청하시는 것을 
성찬을 받을 때 마다 강한 울림으로 느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나눔은 너와 세상을 치유할 뿐만 아니라 
김혜자권사님 처럼 나 자신을 치유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그리스도인들의 친교
 성찬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성도의 교제를 이룹니다. 여기서 친교란 하나 됨, 서로 간의 하나 
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찬은 예수님과 성도, 성도와 성도, 교회와 교회 그리고 더 나아가 교회와 세계가 
일치를 이루는 데 기여하는 세상을 향한 섬김과 나눔의 사명을 결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찬을 받는 대상에 대해서는 지금도 두 의견이 팽팽합니다. 세례 받은 자에게만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찬의 의미를 아는 자가 받을 때 상징으로 받는 떡과 포도주의 신비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를 카톨릭은 미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미사’라는 말은 예배 후 세상을 향한 파송의 의미와 함께 
성찬을 받을 수 없는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은 나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성찬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 됨’이라고 보고 세례의 유무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성찬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성찬 속에 담겨있는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아는 모든 자는 참여할 
수 있으며, 그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진정한 성찬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후자에 동의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합니다. 

 4. 은총의 수단
 성찬은 성령의 은총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전달되는 큰 통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성찬을 
받는 모든 자에게 다 주는 은혜의 대용품이거나 은혜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찬은 
어디까지나 방법에 불과하며, 성찬 자체에는 아무런 유익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만 은혜를 받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성찬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성령이 
역사하여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고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성찬의 떡과 포도주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고귀한 은총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지극히 
겸손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카톨릭은 성찬을 받을 때 먼저 신부에게 머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 왼 손을 밑에 바치고 오른손을 공손히 
펴 그 손에 떡을 받아먹습니다. 

 강의 시간 교수님이 들려준 이야기 하나 소개합니다. 본인도 영화 제목은 모른다고 합니다. 기억을 더듬어 
해 준 이야기를 저도 생각나는 대로 전하겠습니다. 어느 집에 견신례 후에 성찬식에 참여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날의 의미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 날 아침에 엄마는 그 아이에게만 특식을 줍니다. 
많은 형제들의 부러운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특권을 마음껏 누립니다.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오랜만에 먹는 맛있는 특식인지라 조금 급하게 먹고 미사에 참석하게 됩니다. 약간의 긴장 
속에 견신미사가 진행이 되었고, 식후에 성찬을 받고 이어지는 순서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아침에 오랜만에 특식으로 급하게 먹은 것과 성찬식에서 먹은 포도주와 만나 요동을 치는 
것입니다. 참으려 노력했으나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러 미사 중에 이 소년은 교회 밖으로 뛰어나가 
문을 열고 화단 쪽에서 먹은 것을 토합니다. 그런데 정말 충격적인 것은 그 소년이 토한 것을 다시 주어 
먹더라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성찬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받은 소년은 예수님의 살과 피가 땅에 
버려지는 것이 용납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받는 성찬의 떡과 포도주는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은총의 수단인 것을 생각하고 
귀하게 소중히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5. 하나님 나라의 잔치
 성찬은 미래의 메시아 만찬에 대한 소망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찬은 하나님의 통치를 대망케 
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있게 될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찬의 종말론적 
의미로서 마지막 때에 천국잔치에 참여하여 누리게 될 하나님의 나라를 예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찬에서 앞으로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의미가 성찬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성찬 속에 이런 놀랍고도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을 알았으니 더 이상 시간이 많이 간다는 거북스러운 
마음도 가볍게 치부하는 경솔한 생각을 정돈하고 한 달에 한 번 행하는 이 성찬을 통하여 거룩하고 
신비로운 은총을 경험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특별히 아들을 죽이셔야만 했던 하나님의 사랑과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기꺼이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시고 물과 피를 다 흘리며 죽기까지 헌신하신 예수님의 희생을 이 성찬 속에서 보고 깊이 감사를 
드리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그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서는 생명을 내놓을 만큼의 희생과 헌신이 
이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더불어 함께하는 날에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더 깊이 섬길 것을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세계성찬주일에 성찬의 의미에 대하여 새롭게 배우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배운대로 오늘 성찬식에 
참여할 때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그리스도의 희생과 성도 안에 하나 됨과 성령의 감동으로 주시는 
하늘의 은총과 다시 오실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뜨거운 가슴으로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살았으니 우리를 통해 또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나 자신을 기꺼이 
살과 피로 드리는 헌신을 결단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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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원옥 2013.10.07 14:57:35
귀한 말씀듣고 성찬의  의미에 대하여 새롭게 배우고나서...
성찬식에 참여하니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목사님!~~~^*^
최재선 2013.10.08 15:15:15
한서교회 시인이며, 작가님이 칭찬하시니 몸들바를 모르겠습니다..권사님의 마음 밭이 언제나 좋은 땅이어서죠,,그래도 은혜받으셨다니 힘이납니다..감사합니다
배원옥 2013.10.08 17:25:02
목사님! 저야말로 넘 부끄러워 몸들바를 모르겠어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시인이니 작가니 하는말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목사님! 부탁해요..^*^
최재선 2013.10.09 08:14:15
권사님에게 부담을 드렸나보네요..잘 알았습니다..언제나 소녀의 감성으로 진심을 담은 글이 제게는 큰 감동이서요..그리고 우리교회에 글을 예쁘게 쓰시는 분이 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요..과했다면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마음으로만 담아둘게요..마음도 고우신 권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