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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3.09.01 13:50 조회 1,530 추천 0
2013년 9월 1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3_Sep_01)
초심으로 계속 전진하라 히브리서10:32~39

 어느 날 가래떡 부부가 살고 있는 동네에 인절미 신혼부부가 이사를 왔습니다. 새 동네로 이사 왔으니 인사를 하기 위하여 
가래떡 부부 집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인절미 새신부의 미모에 가래떡 아저씨가 반하여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가래떡 
아주머니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차와 다과를 나누면 정겨운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심기가 불편한 가래떡 
아주머니가 인절미 신부의 자리에 떨어져 있는 콩고물을 보면서 하는 말이 “내 그럴 줄 알았어. 여보, 그 인절미 새신부가 
예쁜 것 다 화장발이야. 여기 봐 콩가루.”

 사람이 머물다 떠난 자리에는 흔적이 남기 마련입니다. 주 중에 집사람하고 오랜만에 야구장에 다녀왔습니다. 시민의식이 
많이 좋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관람 후 나간 자리에는 쓰레기가 남아 있습니다. 사람은 한 평생 살면서 추하든 아니면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평소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날 그를 땅에 묻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이런 
흔적을 남기고 간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 링컨, 그는 잡초를 뽑고 꽃을 심다 떠난 사람이다.”

 지난 주 설교 시간에 말씀드린 교인들과 함께 중국 선교 여행 중에 자동차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았다는 성낙범목사님이 
결국 지난 수요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3년 선배이신데, 50대 초반의 너무도 이른 나이에 가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후배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한참 더 힘 있게 일할 나이에 그의 생애의 흔적을 더듬어 본다는 것이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일이어서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안면식 정도, 선후배로서 인사하는 정도의 
관계였는데도 이렇게 몇 차례 설교 시간에 말씀드리는 것은 제게도 적잖은 충격과 그 분의 흔적이 제게 깊은 영향을 주었나 
봅니다. 그 분을 추억하는 분들의 말과 글을 통해서 그 분의 흔적을 알게 되었는데, 목회와 선교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아프카니스탄, 타지키스탄, 중국 등 선교의 오지에 복음을 심는 일에 누구 보다 특심을 갖고 있던 분이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한 집중이 얼마나 강했던지, 취미로 시작한 볼링은 국가 상비군으로 발탁이 될 만큼 실력이 출중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고 당시 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 짧은 긴박한 순간에도 자신을 몸으로 감쌌던 모습에서 마지막까지 
성도를 사랑했던, 자신의 목숨 보다 양들을 먼저 사랑했던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진짜목사였던 모습은 저를 
포함한 많은 선후배 목사들의 심비에 깊은 흔적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오랜 동안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 순간이라도 진짜인 나로, 의미 있게 가치 있게 사는 삶, 
죽었으나 오히려 살아 있을 때 보다 그가 남긴 믿음의 흔적으로 더 기억하고, 더 간절히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말씀을 준비하며 전하는 제 안에 진정한 소원이 있습니다. 제 안에도 이러한 아름다운 흔적이 
있기를 간절히 원하고, 함께 한서 공동체 안에 한 식구로 묶어 주신 성도 여러분 모두도 이러한 아름다운 흔적이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히브리서 저자는 제가 지금 한서의 성도들에게 전하는 마음 보다 더 절박하고 급박하게 인생 여정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 위대한 인생의 성공 자가 되고, 특별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칭찬의 상을 받는 자들이 되기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저자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서를 왜 기록했는지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신약성경 가운데, 
유일하게 저자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성경이고 수신인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초기에는 히브리서가 정경으로 
채택되지 못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히브리서가 정경이 된 것은 히브리서의 메시지가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의 수신인은 히브리서를 읽어 보아야 알 수 있는데, 본래 유대교인이었던 히브리인들이 예수님을 믿은 성도들인데 
예수 믿고서 기가 막힌 어려움을 당한 이들입니다. 기독교인이라는 것 때문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입니다. 재산을 잃고 자유를 잃고, 심지어 생명까지 잃을 위협에 처해졌습니다.
 먼저 동족들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율법을 범하는 범법자라고 지목되어 핍박받았습니다. 재산을 압수하는 것은 아주 작은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부정한 사람들로 취급받았습니다. 성전에 관한 모든 특권으로부터 추방당하게 되었습니다. 로마 당국에 
의하여도 더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야생 가죽의 털을 덮어 쓰고 개들에게 갈기갈기 찢기거나 십자가에 묶여 처형된 후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화형되어 횃불 구실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 사이에 이 죽음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여 배교할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생겼습니다. 
마귀는 춤을 추고 있습니다.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나사렛 예수를 믿은 것이 큰 실수요 환각이요 죄라고 생각하게 할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평생 존경하고 따르던 산헤드린 공회원과 제사장들은 정말 잘못된 것일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따르니까 하나님께서 너회를 번성케 하던가?’ ‘이것이 축복인가? 이것이 구원인가?’ ‘왜 예수는 재림해 오지 않는 
거야?’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은 정말 난처하였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 편지를 쓴 것은, 이들이 체포된다면 로마가 제시하는 석방의 조건 즉 그리스도를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것을 받아들일 지도 모른다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쓴 것입니다. 한 마디로 시급히 기독교가 유대교와 무엇이 다른지, 왜 이런 
핍박을 당하면서도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 심지어 죽을지라도 예수님을 떠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권위 있고 
명료하고 조직적으로 밝혀주어야 하였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초심으로 계속 전진하라’는 권면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는 마음’, ‘초심’이 소중합니다. 
그래서 시작과 관계되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작이 반이다’.‘시작이 성공이다’,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하는 사람은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가장 큰 실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생각만 하면 안 됩니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출발정신, 
초심을 어떻게 지켜나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많은 경우 인생에 실패자가 되는 이유는 이 초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학  생들은 새 학기, 새 학년을 맞이하면서 새 결심을 갖습니다. 사업가는 새로운 사업을 창업하는 정신, 직장인은 처음 
근무를 시작할 때나 승진해서 새로운 위치에 부임하는 마음, 남녀 간에 결혼해서 신혼살림을 차릴 때의 마음, 아직은 성숙되지 
않아서 어딘가 어설픈 부분이 많고 현실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합리하고 지나친 이상주의가 면면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결코 미성숙한 것이 아닙니다. 시작하는 마음, 출발정신, 초심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것,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깨끗하고 정직한 마음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소개한 일곱 교회 중에 에베소교회가 꾸지람을 받은 것이 바로 초심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첫 사랑을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첫사랑, 초심을 다시 찾지 않으면 촛대를 옮겨 버린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디서서 
초심을 잃어버렸는지 생각하고 뉘우치고 처음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하라고 권했습니다.(계2:2~5)

 오늘 본문에서도 히브리서 기자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신앙을 지키고, 이 박해와 핍박을 이겨내어서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 
고난 받는 동료들에게 용기를 주고, 후에 하늘에 큰 상을 받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예수님 처음 만났을 때, 복음을 받아들이고 
사명 따라 살 것을 결심했던 초심을 지켜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신앙에는 중간지대가 있을 수 없으며 전진이든 퇴보이든 
두 길 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침륜에 빠지지 말고 계속 전진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처음에 빛을 받고 나서 많은 고난의 도전을 받으면서도 견디어 내던 시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중에는 
모욕과 환난을 당하여 구경거리가 된 사람들도 있고 그런 형편에 빠진 사람들의 친구가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동정했고 또 자기 재산을 다 빼앗기는 일이 있어도 그보다 더 좋고 더 영구한 재산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일을 기쁘게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신념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 신념에는 큰 상이 붙어 있습니다.”
(히10:32~35)  

 이 사진은 카자흐스탄 빠블라다르에 있는 소망교회의 모습입니다. 최근에 교회 내부를 리모델링하고 너무 감격해서 그 공사를 
마치자마자 저에게 보내온 사진입니다. 저도 감격하여 진심으로 축하했습니다. ‘내일 주일이 얼마나 기다려질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법궤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춤을 추었던 다윗처럼 춤을 추게나.’라는 문자를 보더니 눈물이 나더랍니다. 
그 눈물에 의미는 저도 모르고 아는 자만 알 것입니다. 그 이국 땅, 낯선 나라, 그것도 골 속에 바람이 들어올 만큼 추운 나라, 
이슬람 영향으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기 너무도 힘들었던 나라, 그 나라에 십자가를 우뚝 세우고 교회를 짓고, 큰 태권도 
도장을 짓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이렇게 리모델링하기 까지 한서교회의 사랑과 섬김이 큰 힘이 되었다고 몇 번 감사를 전하는 선교사님의 인사에 더 큰 힘이 
되어 주지 못한 것에 오히려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숨은 빙하처럼 가슴 아픈 이야기가 많을까요? 김선교사님이 카작에 가서 
사역을 한지 10년째 되는 해 깊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수고를 했으니, 더 편하고 좋은 남은 목회 여정과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서 미국으로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본래 약하셨던 사모님이 건강이 이상이 있었고, 김선교사 본인도 갑상선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요오드를 섭취해야 하는데, 그 나라는 미역과 김 같은 것이 없어 생긴 병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갈 
명분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민하던 김선교사는 그냥 남기로, 사역의 마지막을 그 땅에서 마무리하기로 어려운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결정하게 된 것은 지금 20살이 훌쩍 넘은 큰 아이가 태어난지 6개월이 되었을 때 낯선 땅을 밟으면 처음 가졌던 
초심을 떠오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땅을 향해 품게 하셨던 그 시작의 정신을 다시 일깨워 주셔서 다시 사역에 매진하게 되었고, 
이런 엄청난 사역의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어떤 흔적을 남기며 살고 있습니까?
처음 정신, 초심. 내가 처음 주를 만났을 때 고백했던, 결심했던 그 마음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켜야 합니다. 뒤로 
물러가면 안 됩니다. 초심의 마음으로 내 인생에 목표를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합니다. 후에 하늘에서 주시는 큰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 앞에 서는 날이 우리에게 최고의 
영광스런 날이 될 것입니다. 그 날을 바라보며 초심으로 계속 전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예수님 만났을 때 주셨던 처음 마음, 초심을 늘 마음에 두고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마지막이 영광이 되기 위하여 늘 
깨어있어 주신 목표를 바라보며 오늘을 의미 있게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지나간 우리의 자리마다 아름다운 흔적이 남게 
하여 주옵소서. 초심을 고백과 결단을 유지하고 계속 전진해서 주님 만나는 그 날이 최고의 영광스런 날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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