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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8월 4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3.08.04 13:42 조회 1,695 추천 1
2013년 8월 4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3_Aug_04)
경청, 사랑의 첫째 의무  마가복음10:46~52

  어느 마을의 한 영감님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꿩알을 주웠습니다.나무도 하고 
꿩알도 주운 영감님은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 청년을 만났습니다. 
한가득 나무를 지게에 지고 산에서 내려오시는 할아버지를 보고 청년이 묻습니다. 
“할아버지, 나무해 가지고 오세요?””꿩알이다.” “할아버지, 나무해 가지고 
오시느냐구요?” “열 두 개다.”그러자 청년이 다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니, 
할아버지. 나무해 가지고 오시느냐구 여쭈었습니다.” “이놈아, 그런다고 내가 안 
먹고 너 줄 것 같으냐?”결국 귀가 어두운 영감님과 마을 청년은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어제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원로장로이신 김광태장로님이 허리가 
안 좋으시고 연로하셔서 벌써 몇 달 동안 교회를 못 나오십니다. 그래서 가끔 
전화 통화로 안부를 나눕니다. 어제도 모처럼 건강이 호전되어 산책하러 
나오시다가 다리가 접질려 오늘 교회에 못 오시겠다는 말씀을 전하시기 위하여 
전화를 주셨습니다. 말씀 중에 제가 ‘지금 우리교회에서는 여름행사가 한창이라고’ 
교회의 근황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시고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나이가 
들어도 그런 모임에 나도 참석해서 배워야하는데 죄송하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순가 제가 판단하기를 제 말을 잘못이해하신 것 같아서 저도 
‘네 그렇죠’하고 다시 건강 잘 챙기시라고 인사를 드리고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더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먼저 말을 잘하는 것 보다 잘 듣는 것이 우선인 
것을 살아가면서 절실히 배우게 됩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 씨가 아들 이건희 씨에게 남긴 
유언이 바로 ‘경청하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 중에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기에 가장 소중한 것을 아들에게 넘겨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건희 씨는 말을 아낀다는 평입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우리 인간이 말하는 것을 배우기까지 2년이면 족하지만, 듣는 
것을 배우기까지는 80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경청의 습관이 중요하지만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 평생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훈련을 통해 진지한 경청을 하는 순간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바로 경청의 기적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경청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배우길 원하며, 그래서 우리의 인생 속에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말씀을 전합니다. 

 먼저 경청은 머물러 이웃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여리고 도성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맹인 바디매오가 지나가는 예수님을 향해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소리치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외침을 단순히 시끄러운 소리로만 생각했습니다. 48절에 보면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한 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칩니다. 
이 때 49절에 보면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라고 기록합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경청의 자세입니다. 경청은 상대방의 소리를 듣기 위해 머물러서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왜 예수님이 길을 가다가 잠시 머물러 서셨을까요? 예수님에게 
호소하는 바디매오에게 관심이 갖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불쌍히 여겨 달라는 바디매오의 외침이 사랑과 관심이 없는 제자와 다른 사람들에게는 
소음으로 들렸지만 늘 아픈 영혼들에게 관심이 있으신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절규가 
구원을 바라는 간절한 소리로 들렸던 것입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사랑의 첫째 의무는 경청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울음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죠. 그 어떤 바쁘고 
중요한 일이 있어도 자녀가 찾으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기 마련입니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녀가 아파서 내는 소리는 듣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아닌 미물도 본능으로 사랑하는 새끼가 내는 
소리는 듣고 반응합니다. 
 이런 면에서 아마도 예수님은 바디매오가 작은 신음소리로 외쳤어도 그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귀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 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가 내는 가슴에서 내는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시고 그 소리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도 바디매오처럼 여전히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기도를 
드리면 주님은 어쩌면 거지요, 장애를 갖고 있어 사람들로부터 소외받고 버림받은 바디매오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위하여 가시던 걸음을 
멈추고 머물러 서서 듣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드리면 예수님이 우리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 경청하심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합니다. 

 한 심리학자는 오늘날 가정문제의 대부분은 배우자들, 특히 남편들이 경청만 배워도 해결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남편이 집에 와서 여자가 남자보다 하루에 갑절이나, 남자는 1만 5천, 
여자는 3만 단어 더 많은 말을 하며 산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내가 “왜 그런지 
아세요?”하고 물었답니다. 그 이유를 묻는 남편에게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남자들은 
우리 아내로 하여금 똑같은 소리를 두 번씩 하게 만들잖아요?” 그러자 남편이 뭐라고 
한지 아십니까?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
 경청이 어려운 이유는 진지한 집중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진지한 집중과 
노력은 훈련으로 개선되지만 더 근본적으로 사랑하면 경청할 수 있습니다. 방금 소개한 부부의 
문제는 경청의 자세의 문제라기보다는 부부의 사랑을 먼저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면 경청하게 되어 있습니다. 관심이 있기에 작은 신음에도 응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의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소리를 경청하고 머물러 서서 이웃에게 집중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웃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랑이 내 안에 
가득차기를 구해야할 것입니다. 심야기도회 시간에 나눈 말씀처럼 내 안에 진정한 부흥이 
있다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재 점화 되고 그 결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새로워지는 
변화가 일어난다고 배웠습니다. 특별히 세상의 구원을 갈망하여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다른 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슬퍼한다고 배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의 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죽어가는 
영혼을 안타까이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나의 심령 안에도 느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쌍한 영혼들이 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게 되고, 머물러 서서 그를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관심을 갖게 되고 그가 내는 소리에 민감하고 멈추어 다가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첫째 의무는 경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나의 기도에 관심이 있으신 주님께 구하십시오.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찰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 사랑으로 내 주변의 이웃이 내는 
소리에 집중하여 가던 길을 머물러 서서 그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리고 경청은 이웃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경영 컨설턴트였던 피터 드러커는 “의사소통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말하지 않은 소리를 듣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일찍이 
심리학자들은 이런 작업을 가리켜 “제3의 귀로 듣는다.”고 말해 왔습니다. 상대방은 
표면적으로는 나를 공격하고 비난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심층적으로는 나에게 도움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웃을 돕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웃의 소리를 마음으로 듣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제3의 귀입니다.  
 한문으로 듣는다는 말의 ‘廳’자를 보면 좌측에 귀를 나타내는 ‘耳 ’자가 있지만, 
우측에는 열 ‘十’자와 눈‘目’자, 그러니까 열 개의 눈과 그 아래 마음‘心’자가 있습니다. 
모든 눈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주목하고 마음을 내어 주는 일이 바로 ‘듣는 일’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열고 그의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면 그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토로합니다. 
어느 정도 마음이 열렸다고 생각되면 예수님처럼 단순한 질문을 해도 좋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51절 전반부의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러자 바디매오가 마음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렇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드리면 좋겠습니까?”하는 이 단순한 질문만 잘 연습해도 
마음을 열 준비가 된 수많은 상처받은 이웃들이 줄지어 우리를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청으로 바디매오는 눈을 떴고, 구원받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선 제자가 되었습니다. 
경청이 기적의 삶을 선물한 것입니다. 

 이청득심以廳得心 이란 말이 있습니다. “곧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다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혹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준 충고를 기억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들의 말을 경청해 준 것은 기억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한서교회의 성도들이 속회에서 선교회에서 이렇게 서로 사랑의 마음으로 경청하여 
기적을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주장을 지나치게 
앞세우기 보다는, 먼저 상대방의 이야기를 존중하여 들어줄 줄 아는 성숙한 성도로 세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한 주간 동안 적어도 한 사람 이상 우리의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머물러 
서서 진지하게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를 권면합니다.
  인간관계를 더 풍성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얻고, 공동체를 더 아름답게 만들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기적을 선물하는 예수님의 경청의 습관을 닮기를 원합니다. 경청의 
습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경청을 날마다 지속적으로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경청의 습관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경청의 기적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너무 나의 말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는 
한서교회라는 사랑의 공동체 안에 묶어준 지체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너무 지나치게 나의 
말만 앞세웠습니다. 오늘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경청이라는 것을 배우게 하셨으니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힘쓰는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한 주간 지내면서 예수님의 경청의 습관을 
본받아 하던 일, 가던 길 멈추고 지금 이 시대에 바디매오를 찾아가 그의 마음의 소리를 
듣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경청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몸에 벤 습관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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