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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3.07.21 14:41 조회 1,571 추천 0
2013년 7월 21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3_July_21)
마중물 성도, 우물가 교회2 요한복음4:1~15

 요즘 군 생활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매우 인기가 높습니다. 힘들었던 군대의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추억을 떠오르게 하고, 군대에 자녀를 보낸 어머니들은 고생하고 
있는 아들을 떠오르게 하고, 군대의 경험이 없는 여성들에게 말로만 듣던 미지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는 동안에 가장 힘든 훈련을 꼽으라면 단연 유격훈련과 혹한기훈련, 
행군훈련일 것입니다. 사실 저는 군대에서 사고를 예방하는 웅변대회에서 여단에서 1등을 
하여 여단장을 받았는데, 그 웅변 때문에 유격훈련을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유격훈련을 
받고 있는 훈련장과 예하 부대를 돌면서 사고 예방 웅변을 하면서 건강한 군 생활을 위한 
홍보와 괘도, 선도의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훈련을 꼽으라면 
야간행군을 먼저 이야기 합니다. 야간행군을 할 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 잠입니다. 
걸어가면서 자 본 적이 있나요? 앞 사람의 움직임을 어렴풋이 느끼며 계속 걷고 또 걷는데, 
어느 새인가 앞 사람이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살피는데, 저만 혼자 논길로 걷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 비몽사몽간에 걷기 
때문에 앞 뒷사람을 챙길 여유가 없어서 그냥 잘 가고 있으려니 하면서 걷기 때문에 동료 
병사가 대열을 이탈해도 잘 모릅니다. 혼자 딴 길로 가고 있는 것을 안 저는 정신이 번뜩 
나면서 잃어버린 일행을 찾아 뛰어가 제자리를 찾았던 아찔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잠과 함께 견디기 어려운 것은 여름날 야간행군에서는 특별히 갈증이 큰 고통입니다. 
안전군장에 총을 지닌 채 이동하기 때문에 땀이 비 오듯 하고 온 몸은 금방 다 젖기 일쑤입니다. 
더군다나 비가 오면 군장위에 판초우의를 입어야 하는데 습한 더위를 견디지 못하는 
저로서는 최악의 고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땀을 그렇게 많이 흘리니 당연히 목이 마릅니다. 
다음 잠깐 쉬는 장소까지 목마름을 참아야 합니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몸은 덥고, 발은 물집이 
생겨 아프고 쓰러질 것 같은 극한 상황이 될 때 즈음 5분간 휴식이라는 말이 들립니다. 
그리고 짐을 벗고 마시는 물은 그야말로 생명수입니다. 탈진을 방지하기 위하여 환으로 만든 
소금과 함께 먹는 미지근한 물이 얼마나 맛이 있던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때의 
그 느낌을 아무리 설명해도 잘 모릅니다.  

 굳이 군 생활을 예를 들지 않더라도 지금 지루한 장마로 인한 습한 더위와 폭염으로 인한 
타는 듯한 더위를 견뎌야 하는 이 여름을 살고 있는 우리는 갈증이 어떤 느낌인지 다들 알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연구에 따르면 우리 몸의 80%는 수분이지요. 뇌와 뼈 몇 가지 
장기를 빼고 나면 우리는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물통인 셈입니다. 그 중에 2%가 부족하면 
우리의 몸에 신호가 옵니다. 그것이 갈증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렇게 갈증이 채워지지 않으면 피부가 푸석해지고 창자가 뒤틀립니다. 눈물도 메마르게 됩니다. 
입술이 마르고, 혓바닥이 깔깔해지면서 입에서 음식을 삼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땀샘에서 
땀을 내보내지 않으니 열에 들떠 괴롭고, 노폐물이 방출되지 않아 몸이 독소가 쌓이게 됩니다. 
수분이 가득한 혈액이 있어야 새로운 세포를 생성할 수 있는데, 세포활동에 지장을 줍니다. 
관절이 퍽퍽해집니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뇌 활동에도 지장을 주어 두통이 생기고, 생각에 
조리가 없어집니다. 수분의 양이 기준치 아래로 떨어지면 몸은 이렇게 다양한 신호를 보냅니다. 
타이어에 공기가 필요하듯이 몸에는 수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면서 
‘갈증’이라는 경보장치를 달아 두셨습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령한 수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건조한 마음으로부터 다급한 신호들이 
날아옵니다. 툭하면 별일도 아닌데 화를 냅니다. 자그마한 일에도 근심과 걱정에 편할 날이 없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죄가 더 크게 느껴지고 그로인한 두려움으로 늘 마음이 불안합니다. 생각과는 
달리 늘 부정적인 말이 앞서고, 남에게 실패의 원인을 전가하고 늘 불평불만을 쏟아 놓습니다. 
사람들을 믿기 보다는 의심이 먼저 앞서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습니다. 경고의 메시지가 
도착한 것입니다. 내 영혼이 목마르다고 하는 사인, 신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목마른 사람 두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수가성에 사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입니다. 
먼저 사마리아 여인의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일차적인 목마름은 육체의 목마름입니다. 
그래서 우물을 찾아 왔던 것이구요. 그런데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는 예수님께 육체의 
갈증을 해결해 줄 또 다른 우물을 소개해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녀 안에 육체의 갈증을 
넘어 인간관계의 목마름이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그녀의 남편을 불러 오라는 예수님의 요청은 
이 여인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도전적이고 자극적인 질문이었습니다. 
'너는 지금까지 어디에서 인생에 진정한 행복을 찾았느냐?’는 물음입니다. 
 이 질문에 여인은 감추고 싶은 비밀이기에 남편이 없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의 진정한 목마름을 일깨우시기 위하여 여인이 감추고 싶어 하는 부끄러운 부분을 
들추어내십니다. 유대인들에 따르면 그 당시 관습으로는 여자는 최대 2~3회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 이 여인은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좋은 가정을 꾸리며 행복을 추구하고 싶어서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겠지만, 
실제로는 불행으로 떨어진 인간의 비극을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다가 결국 
불행에 빠진 인간, 진정한 행복, 진정한 삶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헤매는 인간, 결국 이 
여인의 비극은 모든 인간의 비극을 상징합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을 위한 무모하고 무절제한 
인간의 실상을 여인을 통해서 보게 하신 것입니다. 목마름을 채우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또 다시 
목마름을 낳게 합니다. 예수님은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차근차근 근본적인 문제, 갈망, 목마름에 
대하여 접근하게 하십니다. 그녀의 근본적인 목마름은 영적인 갈증, 거룩을 향한 열망이었습니다.

 파스칼은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공간이 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다 마음속에 이 공백이 있다. 이것은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채울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다."라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은 “내가 하나님의 품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내 영혼이 안식을 누릴 수 없었다.
"고 자신의 고백록 첫 장에서 고백했습니다.
사람은 그 육신이 병들지 않은 이상 음식을 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도 
병들지 않은 이상 하나님을 그리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으로 내 안에 가득 채워졌을 때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감격했고, 얼마나 기뻤습니까? 세상에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물로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졌습니까? 변화산에서 초막 셋을 짓고 거기서 머물고 싶어 했던 제자의 마음이 너무도 깊게 
공감되지 않았나요? 예배가 기다려지고, 부르는 찬양마다 자신의 신앙고백이었고, 늘 영혼에 만족을 
주었지만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은혜를 주실지 기대하며 사무친 기도를 드렸고, 드리고 또 
드리고 싶고, 섬기고 또 섬기고 싶어 늘 아쉬웠던 가난한 마음,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고,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 안고 찾아 가겠다고 결단하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기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가 영적 갈증, 영혼에 대한 
목마름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 심령 안에 지성소를 회복하기 위하여 진정한 예배자로 설 것을 
소망합니다. 

 그 옛날 다윗은 자신 안에 있는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간절한 외침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의 외침을 하나님께 기도로 아룁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내 
영혼도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 영혼이 지금도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여러분 안에서 부르짖고 있는 영혼의 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자꾸 외면하려 하지 말고,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하지 말고, 마음의 소리에 정직하게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영혼이 보내는 사인을 
무시하지 말고, 하나님이 알려 주신 경보 장치인 ‘갈증’, ‘목마름’의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삽니다.

 지난 주간 우리를 아프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설 해병캠프에 참석했던 고등학생 5명이 
사망했습니다. 태안 관광협회 협회장과 마을 주민들이 파도가 위험하니 바다에서 나오라고, 
훈련을 중지하라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무시하고 강행하다가 아까운 학생들의 생명을 잃었고, 
그들의 가족에게 평생 안고 가야하는 아픔을 남기게 했습니다. 신호를 무시하면 죽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이 무더운 여름 날 우리는 막 저 깊은 우물 속에서 두레박으로 퍼 올린 얼음냉수 같은 물을 마셔 
갈증을 한 번에 날리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는 더 깊은 영혼의 갈증이 
있습니다. 그 신호에 정직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지성소가 있어야 합니다. 
헛된 욕망과 욕심으로 채웠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비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그 공간을 
비워드리고 그 속에 거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삽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분 예수님의 목마름입니다. 예수님이 요한보다 더 많이 세례를 베풀고 더 많은 
제자들을 얻었다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알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로 가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성공은 바리새인들에게 위기였기에 
예수님을 경계하고 위협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는 가장 좋은 
길은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이반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부정하고 더러운 사람들이라 생각하여 상종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정을 강행한 것은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라는 인종의 장벽과 함께 남녀가 내외하는 문화가 강한 
관습의 장벽에 정면으로 맞서십니다.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건네는 사건은 
예사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야곱이 지은 우물가에서 물을 
달라합니다. 이 우물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데, 깊이가 대략 32m가 된다고 합니다. 이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긷기 위해서는 줄을 길게 매달은 두레박이 필요했습니다. 때마침 아무도 없는 인적이 드문 시간인 
정오에 물을 길으러 온 여인에게 예수님은 목이 마르다며 물을 좀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예수님의 목마름은 단순한 육체의 목마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목마름 속에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목마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인간을 향하신 목마름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그 어떤 장벽도 다 허무셨습니다. 
죄로 인한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헐기 위해 신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신과 인간의 장벽도 스스로 허무셨습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과 욕심으로 
세워 놓은 인종과 관습의 장벽도 허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인간을 향하신 구원의 목마름을 
일깨우시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사마리아인이 살고 있는 수가 성으로 오셨고, 거기서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셔서 대화를 나누신 것입니다. 
 낮은 자를 친히 찾아오시는 하나님, 끝까지 추적하시고 살펴주시는 하나님, 우리의 과거에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으시고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시고 용납하시는 하나님, 세상의 기준으로 설정한 그 어떤 편견과 
관습의 장애와 벽을 초월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처지와 상황에 상관하지 않으시고 한결같은 사랑으로 
대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인간을 향하신 구원의 목마름이 인류를 살리신다는 메시지를 예수님은 
애타는 목마름으로 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감신대 신약학 교수인 조경철교수는 요한복음에서 강조한 믿음은 점적이고 순간적인 차원의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현상이라고 피력합니다. 믿음과 믿는다는 주관적인 의식은 다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의식은 약해지거나 사라질 수 있지만, 믿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예수님과의 관계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고 보증하시는 관계이기 때문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편에서 믿음의 의식이 없어질지라도, 예수님과의 관계인 믿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객관적인 실체로서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한, 그곳에 믿음은 언제나 남아 있습니다. 사랑이 영원하면 믿음도 영원한 것입니다. 
  조경철교수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믿는 사람의 주관적인 의식으로만 생각한다고 지적하면서 
믿음은 인간의 의식보다 훨씬 더 크고 높은 것이라 설명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주시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되어 영원히 흐리기 때문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에 예수님과의 관계는 중단되지 않으며, 그 믿음의 관계는 지속되며 구원은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마름이 인간이 세운 모든 장벽을 깨뜨려버리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생수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확고한 믿음으로 로마서8:31~39까지의 말씀을 다같이 교독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한서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몸과 영혼이 보내는 ‘갈증’이라는 경보장치에서 보내는 다급한 신호에 예민해야 합니다. 
무시하면 죽습니다. 그 사인에 정직하게 반응하여 내 안에 하나님이 거하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내 보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지성소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 무더운 여름 다시금 부어 주시는 얼음냉수 같은 시원한 생수로 영육이 강건하고, 평안하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지금 이 시대 몸과 영혼의 목마름으로 죽어도 죽는 줄 모르고 사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님을 연결하는 마중물, 그 마중물 성도가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우리 한서교회가 
예수님과 뭇 영혼을 만나게 하여 저들의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우물가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한서의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육이 건강하여 영혼이 자유롭고 평안하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 시대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생수이신 예수님을 전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또한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 한서교회가 진정 이 시대에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예수님과 뭇 영혼들을 만나게 하는 우물가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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